나는 시민인가

나는 시민인가

  • 자 :송호근
  • 출판사 :문학동네
  • 출판년 :2016-07-13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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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송호근, 시민의 의미를 다시 묻다

‘격돌하는 국민’에서 ‘함께하는 시민’으로 거듭남에 관하여




깊은 절망과 자조의 한숨으로 고스란히 한 해를 채운 2014년 말, 사회학자 송호근은 한 칼럼에서 “우리는 아직도 국민의 시대를 산다”는 말로 한국사회를 진단했다. 근대 시민사회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채 들어선 국민국가. 모든 것이 ‘국민’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미숙한 시민은 국가에 복무하는 ‘국민’으로 반세기 넘게 동원되었다. 공존과 공익의 가치는 사욕 충족의 무한 경쟁 속에서 설 자리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2014년 4월, 세월호는 가라앉았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들이 메아리쳤지만, 그 어떤 것도 해결되지 못한 채 또 한 해가 시작되는 듯하다. 송호근 교수는 2015년의 들머리에 선보이는 이 책 『나는 시민인가』를 통해, 우리가 무엇보다도 ‘시민’ ‘시민-됨’의 가치를 되돌아봐야 함을 강조한다. 불신, 격돌, 위험 사회의 모습을 보이는 오늘의 한국에서, 보다 안전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전제 조건은 바로 탄탄한 시민사회의 건설이다. 시민 개개인에서부터 정치지도자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모든 영역, 모든 계층을 호명하는 저자는, 하지만 그에 앞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시민인가?’





고백: ‘나 홀로 집념’을 돌아보다



오랫동안 날카로운 필치의 비판적 글쓰기를 이어온 송호근 교수. 그런 그가 자신을 돌아보는 글은 과연 어떨까? 자신의 일상 속 ‘시민성’을 고백하는 에세이들로, 저자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춘천 시골집, 아내의 화단에 핀 범부채꽃을 동자꽃이라 부르는 저자. 아내가 꽃 이름을 바로잡아준 것만 해도 벌써 수차례인데, 그는 또다시 실수를 한다. 남의 말에 귀기울이는 능력이 부족해서다. 그런데 사실 이건 별로 큰일도 아니다. 타지로 이사를 준비하던 때, 가족의 의사를 묻지도 않은 채 자신의 안목과 판단력만을 믿고 새 집을 결정해버려 모두를 황당하게 만든 일도 있다. 그는 오랜 세월 ‘자신을 연마’하는 데만 몰두하느라 ‘공동생활’에 대한 감각을 잃은 채 ‘나 홀로 집념’을 발하며 살아온 자신을 돌아본다(「동자꽃이 피었네」).

한편 안경을 잃어버리고 나서 그가 들려주는 자성의 목소리는 이러하다. 노안과 난시를 교정해주는 안경은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보다 자신에게 더 필요한 건 여러 겹으로 중첩되어 두꺼워진 각막을 걷어내주는 안경이라는 것. 오랜 세월 쌓인 주관적 판단과 가치관, 삭지 않은 성정의 울타리를 걷어치우고 사람들의 진심과 본질을 온전히 투사하게 해주는 안경이 필요하다고 그는 자신에게 주문한다(「중년의 안경」).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는,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던 ‘신심’에 대한 장벽을 돌아본다. 이성과 지식의 힘으로 버티고 살아온 자신이 과연 심신의 영역으로 옮겨갈 수 있을는지 스스로 묻는 모습에서, 이성이라는 견고한 철옹성을 두르고 사는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과 반성이 엿보인다(「나는 신자가 될 수 있을까?」).





격돌하는 한국사회, 시민윤리와 사회협약이 없다



자신의 시민성에 대한 성찰에 이어, 저자는 최근 한국사회에 불길한 그늘이 드리운 영역들에 대한 사회학자로서의 관찰과 분석을 제시한다. 경쟁, 불신, 격차, 세습, 위험, 격돌 사회로서 격한 파열음을 내고 있는 한국사회. 저자는 사회 곳곳을 집중적으로 관찰함으로써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 이 모든 현상의 기저에는 ‘공공성의 부재’라는 심각한 근원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밝힌다. 「아침 강의실에서」는 경쟁사회가 보여주는 파국적 위기를 살핀다. 놀라운 경제성장에 환호한 직후, 사회는 초경쟁 상태에 처했다. 남녀노소, 계층, 성별을 떠나 그 누구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이런 사회에서 공존과 공익에 대한 존중은 찾아볼 수 없다. 사회와 정치의 발전 수준이 경제에 비해 한참 뒤처져 생긴 불균형이 낳은 결과다. 저자는 오늘의 경제와 사회 규모에 걸맞게 사회 시스템이 선진화되어야 함을 지적한다.

「공유 코드가 없다」에서 저자는, 미국에서 경험한 자동차사고의 기억을 떠올린다. 가족을 태우고 운전하던 중 실수로 앞차를 가볍게 추돌했는데, 차에서 내린 피해 운전자의 말은 이랬다. “당신의 아이는 괜찮은가?” 아이는 멀쩡했고, 피해 운전자는 보상 요구도 없이 미소를 남기고 떠났다. 이해 갈등이 생겼을 때에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는 행동규범이 있으면 이처럼 분쟁의 불씨는 쉽게 사그라질 수 있다.

1912년 타이타닉호가 침몰했을 때, 선장은 “영국인답게 행동하라!”를 외쳤고, 이에 전 승무원은 자신들을 희생해 승객 1700여 명을 구했다. 그로부터 100여 년 뒤 한국의 바다. 세월호의 선장과 승무원들은 승객을 버려둔 채 탈출했고, 승객 300여 명이 희생되었다. 극단적인 참상 앞에서, 저자는 공유 코드, 즉 시민윤리와 규범이 없는 이 사회의 현실에 장탄식을 토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위기와 갈등이 생겼을 때 즉각 발동되는 행동규범과 윤리의식이 생겨서 “한국인답게 행동하라!”를 외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한국사회, 다시 시민의 가치에 주목하라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진단한다. 구한말의 혼란과 국권 상실, 분단과 전쟁, 군부독재 등으로 이어진 길고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은 정상적인 근대 시민사회 구축의 기회를 놓쳤다. 교양시민층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와중에 계층 상승을 향한 무한 경쟁만이 판쳤고, 자연히 사익과 공익 간의 균형감각을 갖춰야 한다는 사회적 의식이나 합의는 생겨나지 못했다. 결국 시민사회의 자율적 윤리 따위는 잊힌 채 원자화된 개인주의와 권리의식만이 사람들의 머릿속을 채웠다.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온 한국인.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사회적 공공성의 부재가 우리 사회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송호근 교수는 말한다. ‘국민’에서 탈피해 진짜 ‘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그리고 이 사회가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시민적 가치’에 입각한, 시민적 동의와 참여를 존중하는 ‘시민 민주주의’로서의 정치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공익에 긴장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공동체에 헌신하는 시민윤리를 지닌 한국인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자발적 결사체의 집합, 그리고 그 결사체들에서 나오는 권리와 책임에 대한 시민적 자각이 사회의 중요 자산이 되는 민주사회, 한국. 아직 ‘국민의 시대’에 머물고 있는 우리 사회에 이런 ‘시민의 시대’가 도래하길, 사회학자이자 한 사람의 미숙한 ‘시민’으로서 저자는 통절히 반성하고 또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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