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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진격의 대학교

진격의 대학교
  • 저자오찬호
  • 출판사문학동네
  • 출판년2016-10-27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2-23)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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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책을 쓴 사회학자 오찬호(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는 화제를 모은 첫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개마고원, 2013)에서 일상적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 자기계발의 논리에 잠식당한 20대의 황폐한 내면과 이들을 "괴물"로 만든 사회적 메커니즘을 천착한 바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가 이번에 들고 나온 문제는 "기업화된 대학"이다. 사실 대학의 기업화는 이미 마무리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아무도 대학을 학문 탐구와 지성의 요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말했다가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대학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 자체가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과거의 대학이 반독재 투쟁과 민주주의 수호, 시민 정신 구현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면 현재의 대학은 대규모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또하나의 "시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효율"이라는 잣대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평가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학은 기업(의 자본)에 종속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기업이 요구하는 부단한 "개혁(!)"의 과정을 통해 아무런 고민 없이 취업의 전초기지가 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대학이 한 사회의 최고 교육기관인 이상 대학의 문제는 그곳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대학은 기본적으로 "시민"을 배출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 아래 이 책에서 현재 대학의 실상을 가감 없이 공개한다.





    캠퍼스인가 컴퍼니인가

    우리는 ‘시민’이 아니라 기업이 원하는 ‘완전체’를 만든다




    이 책을 쓴 사회학자 오찬호(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는 화제를 모은 첫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개마고원, 2013)에서 일상적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 자기계발의 논리에 잠식당한 20대의 황폐한 내면과 이들을 ‘괴물’로 만든 사회적 메커니즘을 천착한 바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가 이번에 들고 나온 문제는 ‘기업화된 대학’이다. 사실 대학의 기업화는 이미 마무리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아무도 대학을 학문 탐구와 지성의 요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말했다가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대학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 자체가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효율’이라는 잣대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평가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학은 기업(의 자본)에 종속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기업이 요구하는 부단한 ‘개혁(!)’의 과정을 통해 아무런 고민 없이 취업의 전초기지가 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대학이 한 사회의 최고 교육기관인 이상 대학의 문제는 그곳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대학은 기본적으로 ‘시민’을 배출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 아래 이 책에서 현재 대학의 실상을 가감 없이 공개한다.





    대학을 ‘취업사관학교’라고 부르는 이유



    책의 주요 무대는 ‘진격대’다. 물론 저자가 이런저런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이다. 하지만 진격대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는 매우 크다. 진격대에서 벌어지는 일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대학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진격대가 곧 대한민국의 대학인 것이다. 이 책은 모두 네 장으로 구성했다. 1장에서는 캠퍼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왜 요즘의 대학을 ‘취업사관학교’라고 부르는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신입생 길잡이〉라는 필수강의가 있다. 진격대에 들어온 학생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들어야 하는 강의다. 첫 시간을 맡은 강사는 취업정보센터 직원이다. 그는 최근 10여 년간 진격대의 높은 취업률을 자랑스레 소개한다. 금융권 취업 정보, 대기업 입사 선배가 알려주는 학습법, 면접시 이미지 메이킹 등이 그 뒤를 잇는다. 진격대 신입생들은 이런 수업을 매주 두 시간씩 16주간 듣는다. 2학점짜리 엄연한 강의다. 또다른 필수강의 〈글쓰기와 말하기〉에서는 자기소개서 쓰는 법을 배운다. 대학 정규강의에서, 이제 막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업이 요구하는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교육하는 것이다.



    “감명깊게 읽은 책으로는 데일 카네기나 피터 드러커의 책이 가장 안전해요. 요즘은 잭 웰치의 위대한 승리라든가 끝없는 도전과 용기 같은 책도 신선해 보이고 좋아요. 그리고 경영서적만 나열하면 ‘교양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으니 시중에 나와 있는 ‘무난한’ 인문학 고전을 보험용으로 한 권 정도 적어두는 것도 고려하세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좋고, 존 롤스의 정의론은 오해받을 수 있으니 되도록 빼세요.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기업에 대해 비판적인 사회비평서는 절대 적으면 안 됩니다. 장하준 교수가 워낙 유명해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나쁜 사마리아인들 같은 책은 적어도 별문제 없겠다 싶겠지만, 괜히 면접관하고 논쟁하기 싫으면 알아서 빼세요. 특히 금융권은 인문서적에 대한 감상문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금융권 인사담당자가 트집 잡기 제일 좋은 사람이 바로 장하준 교수랍니다. 어쨌든 취업이 목표니까 ‘잘’ 적는 것보다, 꼬투리 잡히지 않도록 ‘안전하게’ 작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명심하시구요. 시민단체 경력 등은 기재하지 않는 게 상식인 거 아시죠? 괜히 이상한 사람 취급 받지 않으려면 조심하세요.”



    진격대 글쓰기 강사의 육성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이다. 요즘 대학생은 입학하자마자 이런 강의를 들으며 학점을 이수한다.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학에서는 기업이 원하는 것만 가르쳐야 하며 기업이 원하는 인재만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현실이 단적으로 반영된 결과가 바로 ‘경영학 열풍’이다. 최근에는 경영학 전공자들의 취업률도 하향세라지만 여전히 경영학은 ‘취업 최강’ 공학계열과 함께 대학의 대세로 군림하고 있다. 인문계열 전공 교수들조차 학과설명회에서 학생들에게 반드시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라고 강조할 정도다. 실제로 취업률이 대학의 지상과제가 되면서 인문계 학과들은 통폐합이라는 구조조정의 된서리를 맞았고 이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기업에서 해당 전공자를 채용하지 않으니 국문학, 철학, 사회학 등은 졸지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학문 취급을 받게 되었다. 이런 학과에 다니는 학생들은 경영계열 학생들과 달리 대충 점수 맞춰 입학한 것으로 오해받는 일이 많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인문학 전반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반反시장경제, 반자본주의, 빨갱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등식이 캠퍼스에 자리를 잡았고, 자연스레 공공선, 연대, 민주주의 등의 가치와 자유로운 토론 문화는 자취를 감추었다. 다음은 철학자 김용옥이 한 대학에 강연을 다녀온 뒤 쓴 글이다. 기업화된 대학이 만들어낸 슬프기까지 한 풍경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책상 밑으로 눈을 깔고 카톡에 열중하였고, 카톡을 안 하는 학생들은 조용히 잘 뿐이었다. 도올이 누군인지, 자기들이 공부하는 과학의 위대성이 무엇인지, 도올의 강론이 자기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일체 자기향상에 관한 의지나 호기심이 부재한 상태였다. 500여 명 중에 내 말을 듣는 초롱초롱한 눈빛은 몇몇 눈동자에 불과했다. 초현실주의적인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나에게는 진실로 깊은 상처를 안겨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내가 사랑해온 내 나라 대한민국이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그 자리의 대한민국 젊은이들을 특징지은 것은 오지 아파티apathy, 즉 무감無感, 그리고 개별화된 시공간 속에 자기를 단절시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대한민국 대학은 영어공화국



    2장에서는 대학의 ‘영어 숭배’ 문제를 다룬다. 국제화라는 관념에 매몰된 대학에서 영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황당한 해프닝들이 소개된다. 대학평가에서 영어강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된 이후 심지어는 국어학 수업까지 영어로 강의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대학은 수수방관이다. 대학평가 국제화 지표에서 높은 점수만 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무분별하게 개설해놓은 영어강의는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 모두에게 득보다는 해가 크다. 또한 평가에도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이를테면 영어회화 초급강의를 미국에서 살다 온 학생도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다.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어 강의도 마찬가지다. 재외국민전형이나 어학특기자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토종’ 학생들은 당연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 좋은 학점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은 마치 피아니스트가 바이엘 교습을 받듯이 기초 영어수업을 듣는다. 당연히 강의의 질 자체도 떨어진다. 영어를 원어민(미국인)처럼 구사할(발음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같은 교실에서도 계급이 나뉜다. 당연히 대학은 이를 묵인한다.

    영어강의는 교수들에게도 고역이다. 학생들과 모국어로 자유롭게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사고력을 기를 수 있는 길이 원천 봉쇄된다. 발음이 ‘촌스럽다’는 이유로 동양철학의 대가가 외국에서 살다 온 스무 살짜리 신입생에게 ‘구리다’고 욕을 먹는 비상식적인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 교수들도 수업 시간에 발음 때문에 원어민 학생에게 창피를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느라 정작 강의의 내용에는 신경을 덜 쓰게 된다.

    ‘영어 지상주의’ 분위기가 대학 사회에 자리를 잡으면서 계급재생산과 교육 사유화도 더욱 공고해졌다. 주지하다시피 영어 실력에는 순수한 노력 이외의 변수들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학생의 어학 실력과 부모 소득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며, 비용 투자 대비 점수 상승폭이 가장 높은 과목이 바로 영어다. 가구의 월 평균소득이 100만원 올라갈 때 그 집 자녀의 토익 점수는 21점 상승한다. 어학연수 경험이 있으면 대기업 취업 확률은 무려 49퍼센트나 높아지고, 평균 7퍼센트 임금 상승이 보장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너도나도 영어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한 진격대 학생은 이렇게 토로한다.



    “지긋지긋한 영어, 이래저래 고민하다 교환학생이라도 다녀오면 좀 낫겠지 싶어 교내 담당부서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았다. 성적도 좋아야 하고 토플 점수도 필요하단다. 1, 2학년 때는 용돈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성적이 좋지 않았다. 토플을 공부하려면 학원비에 교재비, 시험 응시료까지 100만원은 족히 깨진다. 선발된다고 다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해당 학기 등록금, 주거비, 항공비, 생활비, 여행비까지 수천만원이 필요하다. 그냥 포기다. 그런데도 교환학생을 다녀오려고 학기마다 수백 명이 줄을 선다. 우리 집은 뭐가 문제란 말인가?”





    대학은 과연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3장과 4장에서는 대학의 이런 모습을 야기한 거시적 배경에 관해 이야기하고, ‘대학의 기업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 그것이 캠퍼스에 구축한 이데올로기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그리고 대학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에 끼치는 악영향에 대해 경고한다. 사실 기업화는 이 시대 대학의 시대정신이다. 지금은 대학 총장도 학자가 아니라 CEO라 불리길 원한다. 대학이 추구하는 것은 학문과 시민정신이 아니라 자본과 효율이다.

    우리나라는 1990년 중반 이후 대학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대학 수가 증가하자 ‘효율성’을 잣대로 대학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무방비 경쟁에 노출되자 대학들이 찾은 돌파구가 바로 기업화다. 대학 운영 자체를 기업식으로 하겠다고 천명하는 대학들이 등장했다. 캠퍼스에 삼성, 신세계, 금호아시아나, CJ, SK 등 대기업의 이름이 붙은 건물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기업에서 건축비를 부담하면 대학은 예우 차원에서 해당 건물에 그 기업의 이름을 붙인다. 자연스레 그런 건물들엔 커피 전문점 등 상업시설이 빼곡히 들어선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너희 학교엔 스타벅스 있어서 좋겠다”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오간다. 대학은 돈을 중심으로 완전히 개편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또한 기업과 대학의 경계선이 없어졌다. 대학이 곧 기업인 것이다. 한 대학 총장의 말에서 현재 대학이 어떤 가치관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국내 대학 어디도 돈이 중요하다는 걸 가르치는 곳이 없습니다. 심지어 경제학과마저 그렇습니다. 그러니 자꾸 기업가와 부자를 적대시하는 풍조가 생기는 겁니다. 대학이 학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줘야 합니다. 우선 1학년 필수교양으로 기업가정신 과목을 개설하고 창업 관련 교과목도 대폭 늘릴 계획입니다. 대학원에도 창업 트랙을 개설하고요. 21세기 지식기반사회는 경영학과 이공계가 이끌고 인문학은 뒷받침하면서 만들어지는 겁니다.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지만 인문학이 중심인 건 아니죠.”



    대학이 기업화되면서 가장 크게 부각된 문제는 대학의 정치 혐오다. 대학은 탈정치를 넘어 반정치를 추구한다. 학생회장 선거 출마 자격에 ‘품행 방정’과 ‘사상 건전’을 내거는 것이 현재의 대학이다. 대학언론 또한 사실상 기업 사보 수준으로 전락했다. 사설은 기업 찬가로 도배된다. 저자 오찬호는 2010년 총선 무렵 강의 시간에 무상급식을 북한의 식량 배급에 비유한 신문 칼럼을 소개하며 복지 담론을 이념에 귀속시킨 전형적인 프로파간다라고 이야기했다가 한 학생으로부터 “선거를 앞두고 예민한 주제에 대한 언급은 삼가주셨으면 합니다”라는 항의를 받았다. 학내 인터넷 커뮤니티에 사회 이슈에 대한 의견이라도 올릴라치면 금세 “제발 여기서 정치 이야기 좀 하지 마세요”라는 댓글이 주르륵 달린다.

    반복하자면, 이는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에서 ‘시민’을 만들어 배출하는 역할을 포기하는 순간 대학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기업이 추구하는 ‘효율’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아니 어쩌면 우리 사회는 이미 그 지점까지 와버렸는지도 모른다. 더 늦기 전에, 한 사회의 중요한 공적 기관으로서 대학이 스스로의 ‘존재 이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이 그 고민에 의미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대학은 교육 릴레이의 마지막 주자다. 애초의 목적을 잃어버린 경주이지만 마지막 주자는 포기하지 않고 결승선을 향해 보란 듯이 진격한다. ‘무감’을 만들어내고, ‘영어’를 숭배하고, ‘돈’만 되면 무엇이든 하고, ‘비판’을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는 대학에는 고통을 고통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는 주술만 가득하다. 대학은 ‘경제가 어렵다’ ‘기업이 힘들다’는 말만 들어도 화들짝 놀라고, 효율성을 최고의 논리로 여기는 완전체 학생들만 탄생시킨다. (…) 이들이 살아갈 한국의 미래는 암울하기 짝이 없다. 그것을 확실하게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어쩔 수 없다’며 진격하는 대학에 그 진격을 당장 멈춰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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